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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남자의 일생 나훈아

유차영의 아랑가(我浪歌)

아랑가 가요황제 나훈아, <남자의 인생>

2017

나훈아 작사 작곡 / 나훈아 노래

 

우리의 고유한 전통노래, 대중가요 유행가요 뽕짝~ 감흥 유(類)의 노래를 통칭하는 단어·용어·장르, 《트로트》라는 말의 감흥이 아무래도 어색하다. 우리의 고유한 감성과 감흥과 연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비넥타이나 긴 넥타이를 맨 양복 입은 서양사람이, 우리 전통 모자나 의상인 갓과 탕건과 패랭이를 쓰고 있는 모양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우리의 고유한 한복(개량 한복)과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카우보이 모자나 몸통이 긴 양장 모자와 같은 서양 모자를 쓰고 덩실거리는 어색한 감흥이다.

 

그래서 필자는 《트로트》라는 말을 《아랑가》(아랑가·ArangGA)로 통칭하자는 제안을 했고, 현재진행형으로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로 제언하였고, ‘유차영의 아랑가, 국민애창곡 해설’ 글을 연재하고, 여러 강연과 강의에서 주창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은, 아랑가 가요황제 나훈아의 <남자의 인생>을 해설한다. 아버지라는, 남편이라는 그 이름~ 남자의 인생.

 

어둑어둑 해 질 무렵 집으로 가는 길에 / 빌딩 사이 지는 노을 / 가슴을 짠하게 하네 / 광화문 사거리서 봉천동까지 / 전철 두 번 갈아타고 / 지친 하루 눈은 감고 귀는 반 뜨고 / 졸면서 집에 간다 / 아버지란 그 이름은 / 그 이름은 남자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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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여~ 선생은 예술가로 무르익어왔는가? 남자로 살아냈는가. 그대 자신은 어디에 있고, 그대의 그림자는 어떤 모양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미리 예견해둔 듯한 아랑가가 나훈아의 <남자의 인생>이다.

 

나훈아는 올해 희수(喜壽, 77세)의 능선에 올라선, 꿈을 파는(팔아온) 예술철학가객이다. 그가 고별(2024년 7월경 예정)인사를 앞당겨서 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마이크를 놓는데,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SNS로 공개한 편지다.

 

자연인으로 돌아갈 날을 예고한, 나훈아는 부산 초량동 어느 귀댁의 아들이었고, 현대판 대한민국 대중들의 로망이었다. 세 여인의 남편이었고, 두 아이의 아버지다. 근래에는 남편의 자리도 아버지도 내려놓은 듯한 가객 최홍기(나훈아 본명)로 훨훨 아랑가락 날개를 치면서 살아간다. 가끔 노랫말에 소크라테스도 호출해 내고, 오륙도 동백섬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도 오선지 위에 내려 앉힌다.

 

이런 나훈아의 눈 속에 비친 남자, 남편·아버지의 모습은 <남자의 인생> 노랫말에 걸린 단어와 어휘이다. 어둑어둑 해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그대, 그 이름은 남자의 인생~. 참 소담스럽고 순순한, 그러면서도 숨결과 발길이 거치른 남자의 모습이다.

 

<남자의 인생>, 이 노랫말 속의 화자는 아버지, 그는 곧 남자(나, 여자 너)이다. 빌딩 사이로 비치는 노을빛에 시린 눈을 가누며, 흔들리는 전철을 갈아타면서 집으로 간다. 이 남자(여자)는 한 50~60년 전에는 누군가의 귀한 아들 옥동자(옥동녀)였다.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그는 학업을 마치고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여성(남성)을 향하여 눈꺼풀에 콩깍지가 덧씌워져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기까지가 남편(아내)의 자리였다.

 

몇 해의 봄꽃이 피고 지는 세월 속에 본인 슬하의 아이가 태어났다. 옥동자이거나 옥동녀다. 축복과 환희의 시간, 남자(여자)는 아빠(아버지, 엄마·어머니)로 거듭났다. 남편+아버지가 되었다. 그 아가들이 자라서 제 짝을 만나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남자는 남편+아버지+시아버지(장인)이 되었다. 여인네도 마찬가지다.

 

몇 번의 갈바람이 흰 눈을 몰고 오는 세월 마디의 연속에서 손주들이 탄생했다. 남자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오늘의 나(여러분)이다. <남자의 인생> 노래, 2절 노랫말의 주인공 하루를 펼쳐보자.

 

그냥저냥 사는 것이 / 똑같은 하루하루 / 출근하고 퇴근하고 / 그리고 캔맥주 한잔 / 홍대에서 버스 타고 쌍문동까지 / 서른아홉 정거장 / 운 좋으면 앉아가고 아니면 서고 / 지쳐서 집에 간다 / 남편이란 그 이름은 / 그 이름은 남자의 인생.

 

2절 노랫말 화자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운이 좋은 날은 앉아서 가고, 아니면 서서 간다. 앉거나 서거나 지친 몸인 건 매한가지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굴리는 듯한 일상. 중간 정거장이나 집에 와서 캔맥주라도 한잔 들이키는 날은 운수 좋은 날이다. 나훈아의 눈에 비친 세상 남자들 모습이다.

 

얼마 전 지인의 자녀 결혼식장에 갔었다. 축가 순서에서 혼주의 고향 후배 박영규(1953~ 대전출생) 배우가 <남자의 인생>을 신랑 신부의 부모님께 헌가(獻歌) 하는 진풍경을 접했다. 무반주 라이브 절창이었다. 그날 큰 깨우침을 얻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 혼인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의 부모님이라는 각성이었다. 신랑 신부의 부모님을 혼주(婚主)라고 존칭하는, 지극히 오랜 관습을 현장에서 깨달은 것이었다. 나훈아도 누군가의 시아버지, 누군가의 장인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자연인의 하나(아버지)다. 똑같은 인생~.

 

2024년 3월 말 기준으로 한국노래 100년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록 곡은 124만여 곡이다. 이 중에서 남자, 남성, 남편, 아빠, 아버지라는 단어를 노래 제목 간판으로 내건 곡조는 총 6천39곡이다. 남자가 2천850곡, 남성은 41곡, 남편은 70곡, 아빠는 1천324곡, 아버지는 1천754곡이었다. 여자, 여성, 여인, 아내, 엄마라는 단어를 노래 제목의 간판으로 내건 곡조는 모두 합쳐서 8천641곡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훈아의 <남자의 인생>과 비슷한 노래를 찾았다. 고영준(1958~)의 <남자의 길>이다. ‘내~ 살아온 길을 묻지를 마라/ 비바람을 헤치고 왔다/ 거 치른 길을 달려왔다.’ 이 노래는 아내에게 바치는 헌가(獻歌)이다. 고영준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부부 고복수 선생과 황금심 여사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다음 곡은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이다. ‘이 세상의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 하라고~/ 부라보 부라보 아빠의 인생.’ 이 노래는 아들딸을 위해서 본인 이름을 잊어버리고, 부모라는 이름으로만 살아온 어버이들에게 찬사를 헌사(獻詞)한 절창이다.

 

<남자의 길>을 스스로 지어 부른 나훈아는 1947년 부산에서 무역상을 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자라면서 노래를 잘 부르는 것 이외, 음악 공부를 접해 본 적이 없는 음악 맹물이었다.

 

하지만 1965년 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서라벌예고에 입학하고, 이듬해 2학년으로써 오아시스레코드사를 통해 <천리길>로 데뷔하여 가요황제의 길을 개척해냈다. 올해로 58년의 세월 고개를 넘었다.

 

그는 1970년~80년대 이후 오늘까지, <울긴 왜 울어>, <잡초>, <사랑>, <건배>, <무시로>, <갈무리>, <고향역>, <평양 아줌마>, <테스형>, <기장 갈매기>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그의 노래 속의 화자는, 대부분이 스스로(나훈아 본인)이다. 노랫말도 곡조도 자작이 많다. 그야말로 싱어송라이터이다.

 

나훈아를 오디오형 가수라고 칭했었다. 약소하다. 그는 생오비디형 예술가라고 해야 한다. 오디오와 비디오를 현장에서 라이브로 융합한, 현장 열연자(熱演自)다. 그의 공연 현장에는 재미(머리), 흥미(가슴), 의미(영혼)가 혼융된 메시지가 흐르고 있다. 긴 여운도 남긴다.

 

나훈아는 다른 가수들이 종종 초대받는 지방 행사나 기업체 초청에 단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 다른 유명 가수들이 그런 행사에 가서 3~5곡을 부르고 몇천만 원을 받는데, 나훈아는 실제로 모그룹의 회장에게 이런 말을 하고, 한 마디로 딱 잘라서 거절했을 정도다. “나는 대중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서, 표를 산(끊은) 사람 앞에서 만 공연을 한다. 내 공연을 보고 싶으면 당장 표를 끊어라.” 

 

나훈아는 오늘날 열풍이 되어 풍성거리는 수많은 경연장의 심사위원이나 마스터로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나훈아는 한국의 베토벤이라고 존칭해도 좋으리라. 베토벤의 예술생태와 연계되는 면면이 그러하다.

 

예술철학가객이라는, 칭송을 최홍기 선생에게 헌정해 올린다. 존중과 흠모를 모아 응어리 지은, 언어의 보옥(寶玉)이지만, 마음의 창고에는 비어 있는 공간이 많다. 전해드릴 말이 많이 남아 있지만, 표현할 글이 모자란다.

 

나훈아가 마이크를 놓고, 최홍기(본명)로 돌아간다 해도, 그가 남긴 노래는 바다 위를 영원히 부유(浮游)하는 예술 배로 반짝거린다. 한 곡조 한 곡조가 저마다의 돛단배이고, 나훈아라는 노래 선단(船團)이다. 함대(艦隊)이다.

 

나훈아는 한국유행가 100년의 큰 강 물결이었다. 그 자체가 열정이고, 유행이고, 문화이고, 장르이고, 역사였다. 천년 뒤 훗날까지, 나훈아는 훈아가기(勳兒歌記)로 훈아가사(勳兒歌史)로 또렷하리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처럼.

 

가수는 마이크를 놓고, 무대 위에서 보이지 않아도, 그의 목청을 넘어온 노랫소리는 허공지성(虛空之聲), 수중지월(水中之月), 수중지염(水中之鹽), 상중지색(相中之色), 경중지상(鏡中之像)으로 오롯하다. 영원(永遠)이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 걸어야 할 찬사이다.

 

한국유행가 100년사에 흥건하게 넘쳐나는 예술철학가객의 가향(歌香), 가결(歌潔)이여~ 날마다 피고 피어 가슴에서 머리로 혼으로 활활, 화~알활 타오르소서. 아듀~ 나훈아, 아듀~ 최홍기 남자의 인생이여.

 

가요 황제 나훈아 선생도 《트로트》라는 단어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아리랑’으로 하자고 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선생도, 이 말(트로트)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응답·부응하지 않는가.

 

이제는 우리 국민과 대중가요계(작사·작곡·가수·협회)가 다 같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초격차(超隔差) 시대를 능가하는, 초감성적인 초명차(超名差) 이름 《아랑가》를 통념 통설 통용해야 한다. 우리 노래의 가장 고유한 이름 ‘아리랑’과 대중 통속적인 단어 ‘가요’를 합친 이름, 《아랑가》(我浪歌·Aran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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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영;한국아랑가연구원장 / 글로벌사이버대 문화예술 특임교수 / 경기대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 최초유행가스토리텔러 / 문화예술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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