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니가 부러졌다.
김상훈 원장(화평치과)
가족들과 자그마한 섬 제부도로 여행을 갔다.
제부도는 따로 다리가 없이 썰물과 밀물에 따라 섬과 육지가 연결되는 신기한 섬이다.
나는 낯선 장소를 가는 것을 좋아한다.
주말 가족 여행은 나에게 쉼과 여유를 준다.
아침에 일어나 제부도 한 바퀴를 돌며 달리기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저녁 식사로 삼겹살과 목살을 구워 먹기로 했다.
펜션에서의 백미는 바비큐가 아니던가.
아내가 상추와 깻잎을 씻어 테이블 위에 준비한다.
그 옆 불판에 점화 스위치를 돌려 불을 켠다.
온도를 먼저 올려야 한다.
돼지고기는 센 불에서 바짝 익혀야 제맛이다.
손을 대어 본다.
추운 겨울 모닥불에 손을 대는 것처럼 불의 온도를 확인한다.
이때다. 고기를 올린다.
‘촤아아아아악’ 고기가 불을 안고 본인의 몸을 태운다. 딸아이는 슈렉에 나온 고양이 눈처럼 필자에게 눈빛을 보낸다.
나는 불판에서 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집어가족의 접시에 살포시 놓아둔다.
이제 내 차례다.
삼겹살을 상추, 깻잎, 마늘을 담고 쌈장을 찍어 항공모함 같은 쌈을 만든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이제 입으로 들어간다.
이 찰나의 식감을 즐기고 있을 때 갑자기 우지끈하면서 딱 소리가 났다.
누군가에게 내가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중학교 시절 친구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은 느낌이다.
삼겹살의 오도독뼈를 앞니로 잘못 씹은 것을 알았다. 예전에 신경치료를 했던 앞니가 부러졌다.
느낌이 싸하였다.
주말 저녁 제부도에서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앞니 하나가 바람에 갈대가 움직이듯 덜렁덜렁하였다. 치아의 머리 부분과 뿌리 사이가 부러진 ‘치관-치근 파절’로 보였다.
‘이거 이를 뽑아야 할 거 같긴 한데. 어떻게 살릴 수 없을까?’
‘앞니라서 당분간 치아가 없으면 미소 셀카 사진은 어떡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환자의 심정으로 부러진 치아를 사진 찍어 친한 치과의사 모임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을 올렸다.
‘내 지인들이 치아가 아프면 이런 마음으로나에게 연락하는 거구나.’
불현듯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걱정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환자들은 병원에 전화하고 방문한다. 그런 상황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금의 상황을 차분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치아 상태가 좋지 않다.
어릴 적부터 치아 관리를 잘하지 못해 치과를 많이 다녔다.
나에게 치과는 나의 상처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지금도 나에게 치과는 환자로서 가기 싫은 장소이다. 지금도 다른 치과에 치료받으러 가서 진료 의자에 누우면 겁부터 난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
내가 의사로서 나의 상태만을 알뿐 내 치아를 직접 치료하지는 못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이왕 진료받을 일이 있으면 갈 수 있는 거리에 개원한 믿을 수 있는 치과의사에게 연락하고 찾아간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진료받으며 배울 점들을 찾아본다. 환자를 응대하는 시스템이나 진료 방법들을 보고 우리 병원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 치과에서 나는 환자로 빙의한다.
감정을 이입해 본다.
치과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우리 치과가 아닌 다른 치과다.
예약 시간에 딱 맞추어 도착하였다. 숨이 가쁘다. 대기실에서 접수하고 기다린다.
부러진 치아를 뽑을지 일단 임시로 붙여 사용할지 결정이 필요했다.
어릴 적 마취를 받은 치과의 기억이 떠오른다.
썩 좋지 않다. 그때는 의사의 손도 기구도 차가웠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치과의사로서이 상황을 알기에 조금이나마 안심은 된다.
그래도 긴장되는 마음은 매한가지이다.
선배 치과의사가 다가온다.
“일단 엑스레이부터 찍어보고 어떻게 할지 보자.”
엑스레이 촬영실로 가서 나는 직원이 지시하는 대로 묵묵히 자세를 취한다.
내가 잘 안다고 아는 척을 하는 것은 나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믿고 맡겨야 한다. 다시 진료 의자로 돌아왔다.
“부러진 부분이 잇몸 아래로 애매하다. 일단 마취하고 안에 상태를 더 볼게.”
선배가 나에게 말을 건네며 주삿바늘이 나의 잇몸으로 파고든다.
알고 있지만 참 힘든 순간이다.
치과 치료에서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게 마취이다. 마취만 잘 되면 아프지 않다.
마취는 기억을 망각하는 것처럼 감각을 잠시 잃게 해주는 것이다.
통증이 너무 심해 잠을 못 자고 온 환자들은마취부터 시행한다.
그러면 환자는 “이제 살겠다.”라며 안도의 표정을 한다. 마취가 없다면 치과도 존재하기 힘들다.
치과에서는 리도카인 혹은 아티카인이라는국소마취제를 주로 사용한다.
이 마취제를 치료 부위에 넣어야 한다.
방법은 바늘을 이용해 잇몸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찔리는 통증과 약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뻐근한 통증이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환자는 ‘벌에 쏘인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듣고 보니 참 적절한 비유다.
나는 그 통증을 잘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환자의 마취 시 고통을 잘 안다.
그러기에 마취를 최대한 천천히 여러 번 나누어 시행한다. 나는 마취를 안 아프게 하는 것이 치과의사의 역량 중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선배 치과의사의 마취는 아프지 않았다.
손이 부드러웠다.
“빼서 임플란트 심는 것보다는 부러진 치아를 옆 치아랑 붙여서 좀 더 사용하고 차후 상태 안 좋으면 빼자.”
나도 그렇게 동의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부러진 부분을 붙여 사용 중이다.
언젠가는 발치하고 임플란트로 대체할 치아를 가지고 조심히 식사하고 있다.
환자에게 단단한 오도독뼈나 누룽지 먹는 거 조심하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내 이를 부러뜨렸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 주의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
그 순간 당황하고 치통에 고생하며 식사를 잘 못하였다. 그러나 며칠간 환자의 마음을 절실히 느꼈다.
소중한 것은 잊어버리기 전에 모른다.
이도 마찬가지이다.
있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없으면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불편함에서 치아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고 남은 이 관리에 더 신경 쓰게 된다.
모든 불행은 당연히 여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의 이들에게 감사하고 아픈 이를 가지고우리 병원을 방문해 주시는 환자들에게 감사하다.
환자의 입장이 되어 보니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헤아리고 진료에 임해야겠다.
지혜는 지식 더하기 경험이다.
지식만이 있다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않는다.
치아가 부러지는 값진 경험을 통해 나의 지혜 역량이 조금 상승했다.
앞니가 부러졌다.
김상훈 원장(화평치과)
가족들과 자그마한 섬 제부도로 여행을 갔다.
제부도는 따로 다리가 없이 썰물과 밀물에 따라 섬과 육지가 연결되는 신기한 섬이다.
나는 낯선 장소를 가는 것을 좋아한다.
주말 가족 여행은 나에게 쉼과 여유를 준다.
아침에 일어나 제부도 한 바퀴를 돌며 달리기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저녁 식사로 삼겹살과 목살을 구워 먹기로 했다.
펜션에서의 백미는 바비큐가 아니던가.
아내가 상추와 깻잎을 씻어 테이블 위에 준비한다.
그 옆 불판에 점화 스위치를 돌려 불을 켠다.
온도를 먼저 올려야 한다.
돼지고기는 센 불에서 바짝 익혀야 제맛이다.
손을 대어 본다.
추운 겨울 모닥불에 손을 대는 것처럼 불의 온도를 확인한다.
이때다. 고기를 올린다.
‘촤아아아아악’ 고기가 불을 안고 본인의 몸을 태운다. 딸아이는 슈렉에 나온 고양이 눈처럼 필자에게 눈빛을 보낸다.
나는 불판에서 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집어가족의 접시에 살포시 놓아둔다.
이제 내 차례다.
삼겹살을 상추, 깻잎, 마늘을 담고 쌈장을 찍어 항공모함 같은 쌈을 만든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이제 입으로 들어간다.
이 찰나의 식감을 즐기고 있을 때 갑자기 우지끈하면서 딱 소리가 났다.
누군가에게 내가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중학교 시절 친구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은 느낌이다.
삼겹살의 오도독뼈를 앞니로 잘못 씹은 것을 알았다. 예전에 신경치료를 했던 앞니가 부러졌다.
느낌이 싸하였다.
주말 저녁 제부도에서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앞니 하나가 바람에 갈대가 움직이듯 덜렁덜렁하였다. 치아의 머리 부분과 뿌리 사이가 부러진 ‘치관-치근 파절’로 보였다.
‘이거 이를 뽑아야 할 거 같긴 한데. 어떻게 살릴 수 없을까?’
‘앞니라서 당분간 치아가 없으면 미소 셀카 사진은 어떡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환자의 심정으로 부러진 치아를 사진 찍어 친한 치과의사 모임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을 올렸다.
‘내 지인들이 치아가 아프면 이런 마음으로나에게 연락하는 거구나.’
불현듯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걱정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환자들은 병원에 전화하고 방문한다. 그런 상황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금의 상황을 차분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치아 상태가 좋지 않다.
어릴 적부터 치아 관리를 잘하지 못해 치과를 많이 다녔다.
나에게 치과는 나의 상처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지금도 나에게 치과는 환자로서 가기 싫은 장소이다. 지금도 다른 치과에 치료받으러 가서 진료 의자에 누우면 겁부터 난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
내가 의사로서 나의 상태만을 알뿐 내 치아를 직접 치료하지는 못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이왕 진료받을 일이 있으면 갈 수 있는 거리에 개원한 믿을 수 있는 치과의사에게 연락하고 찾아간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진료받으며 배울 점들을 찾아본다. 환자를 응대하는 시스템이나 진료 방법들을 보고 우리 병원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 치과에서 나는 환자로 빙의한다.
감정을 이입해 본다.
치과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우리 치과가 아닌 다른 치과다.
예약 시간에 딱 맞추어 도착하였다. 숨이 가쁘다. 대기실에서 접수하고 기다린다.
부러진 치아를 뽑을지 일단 임시로 붙여 사용할지 결정이 필요했다.
어릴 적 마취를 받은 치과의 기억이 떠오른다.
썩 좋지 않다. 그때는 의사의 손도 기구도 차가웠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치과의사로서이 상황을 알기에 조금이나마 안심은 된다.
그래도 긴장되는 마음은 매한가지이다.
선배 치과의사가 다가온다.
“일단 엑스레이부터 찍어보고 어떻게 할지 보자.”
엑스레이 촬영실로 가서 나는 직원이 지시하는 대로 묵묵히 자세를 취한다.
내가 잘 안다고 아는 척을 하는 것은 나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믿고 맡겨야 한다. 다시 진료 의자로 돌아왔다.
“부러진 부분이 잇몸 아래로 애매하다. 일단 마취하고 안에 상태를 더 볼게.”
선배가 나에게 말을 건네며 주삿바늘이 나의 잇몸으로 파고든다.
알고 있지만 참 힘든 순간이다.
치과 치료에서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게 마취이다. 마취만 잘 되면 아프지 않다.
마취는 기억을 망각하는 것처럼 감각을 잠시 잃게 해주는 것이다.
통증이 너무 심해 잠을 못 자고 온 환자들은마취부터 시행한다.
그러면 환자는 “이제 살겠다.”라며 안도의 표정을 한다. 마취가 없다면 치과도 존재하기 힘들다.
치과에서는 리도카인 혹은 아티카인이라는국소마취제를 주로 사용한다.
이 마취제를 치료 부위에 넣어야 한다.
방법은 바늘을 이용해 잇몸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찔리는 통증과 약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뻐근한 통증이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환자는 ‘벌에 쏘인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듣고 보니 참 적절한 비유다.
나는 그 통증을 잘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환자의 마취 시 고통을 잘 안다.
그러기에 마취를 최대한 천천히 여러 번 나누어 시행한다. 나는 마취를 안 아프게 하는 것이 치과의사의 역량 중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선배 치과의사의 마취는 아프지 않았다.
손이 부드러웠다.
“빼서 임플란트 심는 것보다는 부러진 치아를 옆 치아랑 붙여서 좀 더 사용하고 차후 상태 안 좋으면 빼자.”
나도 그렇게 동의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부러진 부분을 붙여 사용 중이다.
언젠가는 발치하고 임플란트로 대체할 치아를 가지고 조심히 식사하고 있다.
환자에게 단단한 오도독뼈나 누룽지 먹는 거 조심하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내 이를 부러뜨렸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 주의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
그 순간 당황하고 치통에 고생하며 식사를 잘 못하였다. 그러나 며칠간 환자의 마음을 절실히 느꼈다.
소중한 것은 잊어버리기 전에 모른다.
이도 마찬가지이다.
있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없으면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불편함에서 치아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고 남은 이 관리에 더 신경 쓰게 된다.
모든 불행은 당연히 여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의 이들에게 감사하고 아픈 이를 가지고우리 병원을 방문해 주시는 환자들에게 감사하다.
환자의 입장이 되어 보니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헤아리고 진료에 임해야겠다.
지혜는 지식 더하기 경험이다.
지식만이 있다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않는다.
치아가 부러지는 값진 경험을 통해 나의 지혜 역량이 조금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