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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서울 가 살자;유차영의 아랑가

유차영의 아랑가, 속살과 애환

<서울 가 살자> 2016년

임창정 작사 작곡 금잔디 노래


대중가요 범주 속에 유행가가 있고, 유행가 범주 속에 아랑가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랑가》는, 1960년대부터 통용해온 《트로트》유(類)의 노래 풍(風)과 장르에 대하여 우리의 고유한 말로, 필자가 작명(作名)한 단어·용어이다. 우리 전통곡의 상징인 <아리랑>과 통속적인 노래를 의미하는 <가요>를 아우른 복합어, 아랑가(我浪歌·ArangGA).


새로운 이름패를 달아준《아랑가》는, 꺾기와 굴리기 목청 달달거리기를 수반해야하는 우리 가수들이 열창하는 창법의 노래다. 옛 가수이거나 신 가수이거나 특유의 창법으로 노래를 하되, 감성과 감흥의 큰 물주기는 같은 물결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유아속애》(유차영의 아랑가 속살과 애환) 해설곡은 원곡가수 금잔디의 노래, <서울 가 살자>이다. 이 노래를 미스아랑가2에서 전유진이 절창하여 대중들의 감성 온도계를 상승시키고, 멀어져간 그들의 그대야~를 그리움의 마음 거울 속에 비추게 하였다. 미련 없이 다 버리고 서울로 향하게 하는 사랑의 서정~.

그 이불솜 베개 다 버리고 / 우리 이제 서울 가서 살자 / 그대야가 말한 천 번에 약속은 / 괜찮으니 서울 가 살자 / 저 달이 건너가 먼저 비춘다니 / 우리 무슨 어떤 걱정 있을까요 / 그댈 원망하진 않아요 이젠 / 그래서 또 살아보는 세월일건데 / 미련 없이 버리고 서울 가 살자.


<서울 가 살자>를 열창한 전유진은, 이런 창법 《아랑가》계에 보물급 가수다. 포항 동성고교 재학생 2006년생 전유진은 미스터트롯 정동원보다 1살 위다. 그녀는 2020년 크리스마스이브 미스트롯2 경연장의 참가자들과 마스터와 방방곡곡 안방시청자들은 눈과 귀를 호사(好事)시켰다.


당시 그녀의 목청을 넘어온 노래는, 2016년 임창정이 만들어 금잔디 가수의 목소리로 세상에 나온 <서울 가 살자> 노래였다. 이 곡의 시대서정은 1960~70년대, 서울로~ 서울로 발걸음을 지향하던 이농향도(離農向都)시대를 품은 곡조다. 사랑을 언약한 청춘남녀 한 쌍이 야반도주를 하여 서울로 달아나는 듯한 사연. 노래 소절마다 구어체 어휘가 가슴 아리게 한다. 그대야가 말한 천 번의 약속(단봇짐으로 싸서, 어디든 숨어서 단 둘이 살자던)은 괜찮으니 서울로 가자~.

별빛이 뜨고도 해가 있다는 / 그곳에서 어떤 행복 기다릴까요 / 그댈 원망하진 않아요 아마 / 내가 더 원했었던 사랑일 테니 / 그대도 놓지 말아요 / 오~ 저 달이 건너가 먼저 비춘다니 / 우리 무슨 어떤 걱정 있을까요 / 그댈 원망하진 않아요 이젠 / 그래서 또 살아보는 세월일건데 / 미련 없이 버리고 서울 가 살자.


사랑과 행복을 언약한 청춘 한 쌍의 연정이 애절하다. 짐이 될 만한 이불 솜 베개를 다 내어 던지고 달랑 괘나리 보따리에 옥양목 꼬쟁이 속옷만 챙겨들고 서울행 밤차에 몸을 실은 사랑님들.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려 준 행복은 어떤 빛깔의 무지개였을까.


이 노래의 모티브 시대는 청춘남녀 누구나 대처를 향해서 일탈하듯 떠나가는 꿈을 갖지 않은 이가 없었다. 6.25 전쟁 후, 봄 산 너울에 부풀려진 수풀처럼 늘어난 베이비부머 식구들, 한 입이라도 들면서 산업화에 편성하던 시대가 그 시절이다.


<서울 가 살자> 속 서울은, 1392년 고려(918~1392) 멸망으로부터 확장되기 시작한 도시다. 그 해 8월 이성계는 고려 35대 왕으로 등극한다. 왕씨 왕계(王系)에서 이씨(李氏)가 왕계를 이은 천지개벽. 역성혁명으로 옥새(玉璽)를 빼앗아 넘겨받았던 것이다.


나라 이름을 고려에서 조선(朝鮮)으로 바꾼 것은 이듬해인 1393년 2월이다. 이때 명나라로 가서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들고 온 사람이 정치 모사꾼 칠삭둥이 한명회의 할아버지 한상질이다. 이후 이성계는 고려의 서울 개경(開京)의 운(運)이 다했다고 하면서, 1394년 11월 남경,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한다.


이때 한양 성을 설계한 신하가 바로 신권정치(神權政治)를 꿈꾸던 급진개혁주의자 정도전(1342~1398)이었다. 그는 도성의 4대문(門)과 보신각에 유가의 오행정치 이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넣는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정도전은 알지 못했으리라. 그로부터 580여 년 뒤, 한강의 남쪽 강남에 아파트가 들어설 것은. 별빛이 흐르는 다리(한남대교, 제3한강교)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갈아엎고 아파트와 빌딩 숲이 가득한 오늘의 모습을.


서울인구는 1863년 20.4만, 1909년 23만, 1930년 30만을 돌파한다. 이때는 일본제국주의 강점기로 조선인과 일본인이 뒤섞인다. 1934년 39.4만 중 조선인 27.9만, 일본인 10만, 기타외국인이 6천여 명이었다.


이후 1960년대에 300만 명을 돌파하고, 1980년대 강남개발 붐을 타고 1천만 명 시대를 연다. 지금은 어떤가. 대한민국 인구의 25%가 서울에 산다. 이는 서울 행정구역의 확장과, 도시개발, 시골 인구의 서울 유입 등 사회인류학적 메카니즘과도 연계된다.


<서울 가 살자> 노래를 지은 임창정은 1973년 이천 출생, 가수 겸 배우다. 그는 이천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중앙대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1990년 영화 <남부군> 단역 배우로 데뷔한 후 KBS 드라마 <지구인>과 MBC <여명의 눈동자>에도 출연하였다.


이후 가수로 데뷔하여 2015년 <또 다시 사랑>, 2016년 <서울 가 살자>, 2017년 <내가 저지른 사랑> 등을 발표하면서 대중들과 소통한다. 이후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십삼월>, 2020년 <힘든 건 사랑이 아니다>를 발매했다.


<서울 가 살자> 원곡 가수 금잔디는 1979년 홍천 출생 본명 박수연, 예명은 박노희·박수빈으로 2000년에 데뷔했다. 홍천여고를 거쳐 공주한국영상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했다. <우지마라> 가수 김양(본명 김대진)과 동문 선후배사이다. KBS 강원어린이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한 그녀의 노래는 <영종도 갈매기>, <일편단심>, <바람의 유혹>, <초롱새>, <불어라 미풍아>(OST), <세월아>, <사랑탑>, <시치미> 등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퀸, 금잔디는 <서울 가 살자>를 마포구 하나투어 브이홀에서 데뷔 16년 만에 처음으로 쇼케이스로 발표한 곡조이다. 이때 작품자 임창정이 직접 코러스를 해 준다. 이 앨범에는 <아저씨 넘버원>, <엄마의 노래>, <오라버니>, <일편단심>, <초롱새> 등이 실렸다.


반짝반짝 작은 별로 무대에 서서 <서울 가 살자>를 절창하여 올 하트를 받으면서 본선으로 직행한 전유진은 포항시 호미곶이 있는 바다 근처 도구리 출생, 포항 동해초등과 동해중을 거쳐 오늘 포항동성고를 빛내고 있다. 초등 4학년 때 잠시 민요를 배운 적이 있고, 트로트는 각종 트로트 경연을 보면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단다.


그녀는 포항해변전국가요제에서 <용두산 엘레지>를 불러 대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이때 받은 상금 700만원으로 아버지의 임플란트 인공치아를 해 준 효녀다. 그녀의 절창 곡은 <정말 좋았네>, <꿈속의 사랑>, <당신이 좋아>, <쓰리랑>, <어머나> 등 자기보다 탄생 연세가 높은 곡들을 옥퉁소 같은 목청에 걸친다.


<서울 가 살자>는 사랑의 콜센타에서 장민호도 열창을 했었다. 보물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다만 발견하지 못할 뿐. 그래서 국민 참여 오픈 오디션의 장이 귀한 것이다. 문화예술분야·의사당·정무부서·기업 등 사람이 본질인 곳은 다 마찬가지다. 매니아가 전문가를 능가하는 시대여, 어서 오시라.


오늘날 풍성거리는 《트로트》라는 용어, 어원(語源)이라고 할 수 있는 <Fox trot>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펼쳐드린다. Fox는 명사로는, ‘여우, 여우모피’라는 말이다. 동사로는, ‘속이다, 혼란스럽다’는 의미다. Trot는, ‘빨리 걷다, 속보(速步, 말을 속보로 가게하며 타다)’라는 말이다.


이 단어가 바다 건너 동쪽의 섬나라를 거쳐, 도로또 혹은 도롯도라는 말로 현해탄을 건너와서, 1960년대 우리의 전통가요풍의 상징하는 《트로트》라는 이름패를 달았단다. 어찌하면 좋을까? 누구의 책임인가? 도대체 사전적으로 감성·감성적으로 어떻게 연계지은 용어일까.


 오늘날 서양에는 《트로트》라는 음악 장르는 사용하지 않고, 사교댄스 용어로만 남아 있을 뿐 연주용어로는 쓰지 않는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34년 351일의 세월 터널 끝에 매달린 듯한 단어 《트로트》, 이는 《뽕짝》이라는 명칭으로 통용하려고 했었지만, 비하적인 용어라는 이유로 음악계에서는 쓰지 않았단다. 이후 1970년대에 이르러 폭스트로트의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되, 강약의 박자를 넣고, 독특한 꺾기 창법을 구사하는, 독자적인 가요 형식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왜~, 그 많은 우리 고유의 용어를 통용하지 않고, 사전적인 의미로도, 전통적인 의미와 감성으로도 연계되지 않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이에 대한 설명과 해명과 과정과 절차에 대한 답은 언제쯤 밝혀질까. <서울 가 살자>와 같은 노래 유(類)를 《아랑가》(我浪歌)로 통칭하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아랑가연구원장 /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 경기대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 유행가스토리텔러 / 문화예술교육사 /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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